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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구 남성헤어디자이너 1세대가 털어놓는 경험담
작성자 admin 등록일 2013-11-15 조회수 46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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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남일보에 대구남성헤어디자이너 1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기사로 실렸네요.
대구지역 남성헤어디자이너 1세대인 이재호 대구공업대 뷰티아트과 교수, 이헌우 T&K대표, 박상후 모즈헤어 대표(왼쪽부터)가 중구 동성로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.
◆ 남성헤어디자이너 개척자 이헌우
이헌우 T&K미용실 원장(56)은 31세 때 가위를 처음 잡았다. 이후 미용실을 하고 있던 아내의 가게에서 5년간 스태프로 일을 했다.
“아내가 처음 단발머리 커트를 맡겼는데 좌우 균형을 못 맞춰 계속 깎았지요. 도저히 안 되기에 도망을 가버렸습니다. 아내가 일을 마무리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지요. 한번은 서투른 가위질에 고객의 귓밥을 자른 일도 있어요. 귓밥이 떨어져 나가 피가 많이 났습니다. 다행히 단골손님이라 어렵지 않게 해결했지만 실수투성이였습니다.”
이 대표는 미용사가 되고 난 뒤부터 좋아하던 담배도 끊었다. 그리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도 버렸다. 일을 마치고 난 뒤 밤 9시부터 자정까지 혼자 가게에 남아 가위질 연습을 했다.
그는 수성구 만촌동 청구시장 앞에서 ‘나드리 미용실’이란 이름으로 8년간 가게를 열었다가 이후 시지로 옮겨 ‘이헌우 헤어살롱’으로 이름을 바꿨다. 시지에서 대박을 친 그는 90년대 중반 동성로로 진출해 T&K라는 미용실 브랜드로 승부를 걸었다.
T&K는 그를 비롯해 이재원·박준곤·박권용·정칠수·권혁신 등 남성 6명이 힘을 합쳐 만든 미용실이다. T&K는 동성로에서 바람을 일으켰다. 495㎡(150평) 규모에 미용실을 카페처럼 꾸며 라이브공연도 했다. IMF외환위기 때는 가격을 낮춰 손님이 더 찾았다. 평일에도 200~300명이 가게를 찾는 등 호황을 누렸다. 이 대표는 이재호씨 등과 함께 대구지역 남성미용사 10여명으로 구성된 ‘남미회’라는 모임도 만들어 친목을 도모했다.
이 시기를 전후해 모즈헤어 박상후 대표도 찰리 신의 신헤어라인, 신데렐라, 탈렌트 등 남성미용업주와 함께 ‘더베스트’라는 모임을 만들었다. 두 친목단체는 2000년 대구남성창작미용회(초대 회장 박상후)로 통합돼 3년 전 대구경북미용포럼으로 발전했다. 예전엔 남성끼리 주로 모임을 가졌지만 요즘 젊은 헤어디자이너들은 남녀 구분 없이 모임을 갖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.
이 대표는 대구중구미용협회 회장과 협회 고문을 맡기도 했다.
◆ 현역 1세대 헤어디자이너 박상후
박상후 모즈헤어 대표(49)는 84년 스무살 때 가위를 잡았다. 경력으로 보면 이 대표보다 2년 앞선다. 그는 남성헤어디자이너가 나오는 TV드라마를 보다 미용업계에 투신했다. 당시 미용사자격증을 땄지만 남성미용사를 받아주는 미용실은 없었다. 부산까지 내려가서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.
“지금은 대구지역 미용실 약 6천개소 중 600개소의 업주가 남성입니다. 당시엔 남자미용사가 희귀한 존재였지요.” 그는 우여곡절 끝에 85년 대구 달서구에 있는 한 미용실에 스태프로 들어갔다.
“당시엔 연탄불에 고데기를 데워 머리를 했습니다. 고데기 온도를 몰라 파마를 하다 여성의 머리카락을 홀딱 태워버린 일도 있었지요. 겨울인데도 등짝에 식은땀이 줄줄 났습니다.”
박 대표는 86년 계명대 후문 양지로에서 개업을 했다. 당시 단골로 왔던 한 학생은 지금도 그의 단골이다. 그는 양지로에서 히트를 쳤다. 서울로 진출하려는 생각도 했으나 프랑스 미용 프랜차이즈인 ‘모즈 헤어’로 대구에서 처음으로 오픈해 지금은 중구 야시골목에서 가게를 하고 있다. 박 대표는 대구지역 남성미용사 1세대이지만 현역에서 활동하며 선후배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.
◆ 헤어디자이너에서 교수로 이재호
이재호 대구공업대 뷰티아트과 교수(55)는 81년 대구에서 최초로 미용사 2급자격증을 딴 남성이다. 2004년엔 한국인 최초로 중국 미용사면허를 취득했으며, 2009년엔 이용기능장도 땄다. 그는 7남매 가운데 장남이다. 22세 때 미용을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그를 자식으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. 친구들도 정신이상이라고 했다. ‘오죽 할 짓이 없어 남자가 여자 머리를 하느냐’는 손가락질도 받았다.
그는 중구 화전동에서 ‘지오’라는 이름으로 미용실을 개업했다. 이후 헤어시티, 하이클래스, T&K로 이어갔다.
“80년대 후반 요정시대가 저물고 룸살롱시대가 시작되면서 소위 술집아가씨들 사이에 ‘달드라이’가 유행했습니다. 그 친구들이 저희 가게에 줄을 섰지요.”
이 교수에 따르면 88올림픽 이후 컬러TV가 확산되면서 컬러염색이 들어오고 여행자유화가 시작되면서 여성들의 헤어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. 또 90년대 들어 부산 동주대학에 뷰티학과가 처음 생기는 등 뷰티열풍이 불기 시작했다. 90년대 초 자끄레상주, 모즈 등 외국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고 90년대 중반엔 대구에서도 토종브랜드인 T&K, 수장, 신헤어라인, 화이트 등이 생겨났다. 이 가운데 신헤어라인은 지금까지 40여개의 프렌차이즈를 갖고 있는 대구 대표브랜드로 성장했다.
“2002년 업계 최초로 T&K라는 법인을 만들었습니다. 주식회사로 중국 등 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였지요. 외국미용업계에 우리의 뷰티산업이 뜨고 있습니다. 중국의 경우 남성미용사가 미용업계에서 30~40%를 차지합니다”
그는 2005년까지 헤어숍을 하다 경북대에서 미용심리를 전공한 뒤 대구공업대 교수로 갔다. 배영수 까까머리 대표도 비슷한 시기 대구보건대 교수로 갔다.
“여성보다 남성헤어디자이너가 돈을 더 벌 수밖에 없습니다. 왜냐하면 여성은 부업이란 측면이 있고 남성은 주업이지요.”
그는 “한때 이용업계에서 미용실에서 남자손님을 받지 마라. 또는 자동이발기계(바리깡)를 쓰면 안 된다고 데모를 하기도 했다”며 “시대가 변하는 만큼 업계에서도 이를 따라가는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이 필요하다”고 강조했다.
특히 남성은 여성과 달리 기술적인 측면보다 경영과 관리 측면에서 장점이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미용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.